주제:토플 강의 거시경제학
월요일 오후 세 시, 경제학과 삼 층 조교실이었다. 긴 탁자 위에 중간고사 답안지 삼백 장이 상자째 쌓여 있었다. 창가의 녹슨 라디에이터가 가끔 딱딱 소리를 냈다.
나는 이준서, 스물다섯 살, 경제학 석사 1년차다. 이번 학기에 학부 '거시경제학 원론'의 조교를 맡았다. 대학원생 조교는 모두 넷이고, 팀장은 박사과정 4년차 라이언이다. 그는 경기 후퇴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광범위한 지역의 고용 자료를 다루는 논문이었다.
시험은 하퍼 교수님이 냈다. 첫 서술형 문항은 주식시장이 급락하면 가계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둘째 문항은 원료를 수입하는 제조업체 이야기였다. 원료가 저렴한 해와 비싼 해에 공장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쓰게 했다.
셋째 문항은 실질 금리를 묻는 계산 문제였다. 은행 예금 금리가 오 퍼센트이고 물가 상승률이 칠 퍼센트일 때, 저축하는 사람의 실질 이익은 얼마인가. 만 달러를 맡겼다면 일 년 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금액은 오히려 줄어든다.
넷째 문항은 경기 후퇴로 실직한 사람이 늘 때 정부가 쓸 재정상의 대책을 물었다. 다섯째는 경제적인 충격이 심리적으로 소비를 얼마나 줄이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라이언이 채점 분담표를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서술형 다섯 문항은 자기와 소피, 마테오가 나눠 맡았다. 내 이름 옆에는 객관식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준서는 국제학생 조교니까 객관식만 채점해. 서술형은 영어 답안 읽는 게 일이라서." 라이언은 펜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나는 할 말을 찾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식 채점은 기계가 하고, 나는 결과를 확인하면 됐다. 객관식은 그날 저녁에 끝났다. 서술형 채점은 이틀이 경과한 수요일 아침에 끝났고, 점수는 바로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그 주 금요일 오후에는 이의 신청 상담이 열렸다. 그때까지 학생들이 낸 신청서를 모은 상자가 탁자 끝에 있었다. 마흔 건이 넘었는데, 그중 서른여덟 건이 같은 셋째 문항이었다.
정답표에는 마이너스 이 퍼센트라고만 적혀 있었다. 서른여덟 명은 마이너스 일 점 팔칠 퍼센트라고 썼다. 라이언은 그 답을 모두 영 점으로 처리했다. 한 학생은 신청서에 터무니없는 감점이라고 적었다.
나는 상담 전에 원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객관식 점수를 성적표 파일에 옮기려면 교수님의 채점 기준표에서 배점을 확인해야 했다. 여섯 쪽짜리 문서였는데, 생각보다 종합적인 기준이었다. 배점 표 뒤의 쪽도 끝까지 읽었다.
넷째 쪽에 셋째 문항 설명이 있었다. 실질 금리는 일반적으로 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빼는 근사식으로 구한다. 그러나 조금 더 복잡한 나눗셈으로 계산하는 정확한 식을 쓴 답도 정답으로 인정한다. 그 경우 값은 마이너스 일 점 팔칠 퍼센트다.
교수님은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두 식의 차이는 기껏해야 영 점 일삼 퍼센트포인트로 미미하다. 그러나 학생이 이론상 더 정확한 식을 썼다면 감점하지 않는다. 근사식은 그 특성상 금리가 높을수록 잠재적으로 오차가 커진다. 채점자는 숫자보다 추론 과정을 본다.
마지막 쪽은 이의 신청 절차였다. 이의 신청은 공정을 위해 그 문항을 채점한 조교가 아닌 다른 조교가 판정한다. 판정이 애매하면 학생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하고, 결과는 일주일을 초과하지 않고 학생에게 전달한다.
셋째 문항을 채점한 사람은 라이언이었다. 서술형을 채점하지 않은 유일한 조교가 나였다. 원칙적으로 이 서른여덟 건의 판정은 내 몫이었다.
나는 기준표 넷째 쪽과 마지막 쪽을 출력했다. 그리고 신청서 가운데 무작위의 표본 다섯 장을 뽑아 계산을 다시 해 봤다. 다섯 장 모두 정확한 식이었고, 값도 같았다. 의도적인 실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금요일 상담 시간, 조교 넷이 탁자에 나란히 앉았다. 라이언이 셋째 문항 신청서를 들어 올렸다. "이건 정답표와 다르니까 전부 기각이야. 숫자가 조금 달라도 틀린 건 틀린 거고."
열린 문 너머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학생 두 명이 우리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소피가 신경 쓰이는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용기를 내 출력한 종이 두 장을 탁자 가운데 놓았다. "교수님 채점 기준표 넷째 쪽입니다. 정확한 식으로 계산한 답도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되어 있어요."
라이언은 처음에 웃었다. "물론 정답표는 내가 교수님한테 직접 받았어." 그래도 그는 정답표를 옆으로 밀어내고 종이를 끌어당겼다. 넷째 쪽을 읽고, 마지막 쪽 절차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조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는 종이를 내려놓고 한동안 화이트보드의 분담표를 봤다. 그러고는 마커를 들어 내 이름 옆의 '객관식'을 지웠다. 그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말투에도 악의는 없었다.
"월요일에 준서한테 객관식만 채점하라고 했지. 그 말은 취소할게. 기준표를 끝까지 읽은 건 준서야. 셋째 문항 이의 신청은 준서가 판정해. 나는 채점한 사람이라 빠질게."
마테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소피는 다정하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라이언은 바로 하퍼 교수님께 메일을 썼다. 십 분 뒤 답장이 왔다. 판정은 이 조교에게 맡긴다는 한 줄이었다.
나는 신청서 서른여덟 장을 하나씩 다시 읽었다. 세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확한 식이었다. 서른다섯 장은 점수를 온전히 돌려 만점으로 고쳤다.
나머지 세 장은 식은 맞았지만 나눗셈을 틀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학생들에게는 부분 점수만 줬다. 대신 어디서 틀렸는지 한 줄씩 표시해 붙였다. 결과를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다.
영 점과 부분 점수는 학생에게 전혀 다른 숫자다. 조교를 원망하기보다 자기 계산을 다시 볼 수 있게, 판정은 빠를수록 좋았다.
한 학생은 판정 전에 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메일을 보냈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철회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그 학생의 답도 정확한 식이었다.
저녁 일곱 시, 판정 결과를 성적표 파일에 모두 옮겼다. 라이언이 분담표를 새로 출력해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기말고사 서술형 칸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노트북 전원을 껐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채점 기준표 출력본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창밖으로 학교 도서관 불빛이 천천히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