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9급 (영어) 공문
목요일 (오전) 10시, 반납 카트에는 그림책이 마흔 권쯤 쌓여 있었다. (방학) 때문에 대출이 (빈번한) (주) 였다.
나는 문채원, 스물다섯 살이다. 구립도서관 사서직 9급으로 들어온 지 일곱 달이 지났다. (아침마다) 무인 반납기에서 책을 (꺼내) 바코드를 찍고, 서가에 하나씩 꽂는다. (이용자) 가 서가 사이로 (지나가면) 카트를 (벽) 쪽으로 붙인다.
그날 한 (여자분) 이 아이 (손을 잡고) 자료실 데스크로 왔다. 엄마가 천천히 (말했다) .
“ (안녕하세요) . 저는 응우옌 티 투예요. 베트남에서 왔어요. 한국에 (산 지) 9년이에요.”
투 씨는 (원래) 호찌민에서 초등학교 (교사) 였다고 했다. 지금은 근처 물류 회사 (사무실) 에서 (일한다) . 딸 민아는 한국어는 (잘하지만) 베트남어 책은 (거의) 읽지 못한다고 했다.
“ (토요일에) (엄마들이랑) 그림책 읽는 모임, (하고 싶어요) . 베트남어 하나, 한국어 하나. 엄마 (목소리로) 읽어 주는 게 (매력이에요) .”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한국어 (억양) 에는 남쪽 지방 말투가 조금 섞여 있었다.
(뒤에서) 낮은 (발소리) 가 났다. 염상철 팀장이 서류철을 (들고) (다가왔다) . 자료실 12년 차이고, 프로그램 예산은 모두 그가 결정한다.
“ (그런 건) (도서관) 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문화 프로그램은 구청 (공모) 로 (내려와요) .” 그리고 나를 보았다. “채원 씨는 (책이나) 꽂아요. 카트가 그대로잖아요.”
조금 (짜증난) 목소리였다. 투 씨가 민아의 (손) 을 꼭 쥐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요.”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억누르고 (고개) 를 숙였다. “ (죄송해요) . 어린이실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찾아갈게요.”
팀장은 (서류철) 을 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구청에서 온 (공문) 이었다. 다문화 가족 독서 프로그램 (지원) 사업 공모 안내였다.
“ (내용) 은 내가 (이미) 정했어요. 작년처럼 동화 구연가 불러서 8회. 채원 씨는 칸만 (채워요) .”
팀장의 (계획) 은 (간단했다) . 외부 (강사) 가 한국어 동화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듣는다) . 작년 (결과) 보고서에는 참여 인원 112명이 적혀 있었다. 숫자만 보면 고무적인 결과였다.
나는 (씁쓸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 카트를 마저 (비우고) 공문을 처음부터 읽었다. 한글 공문 뒤에는 외국인 주민용 영문 (안내) 가 붙어 있었다. 이상하게 그 영문 쪽이 한 (단락) 더 길었다.
첫 장은 사업 (목표) 였다. 이주 배경 (가족) 이 도서관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이웃) 과 잘 지내도록 (돕는) 것이다. 지원금은 한 기관에 300만 원으로 (제한한다) .
둘째 장 맨 아래가 심사 기준이었다. (원칙적으로) 이주 배경 (주민) 이 기획이나 진행에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앞서 (선정한다) . 두 언어 이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에 따라) 가산점 10점을 준다.
마지막 줄은 (짧았다) . (반대로) 한국어로만 진행하는 강연과 구연은 이번 공모에서 (제외한다) . 주민 강사도 (반드시) 외부 강사와 같은 금액의 강사료를 받는다. (예외) 는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줄에서 손을 멈췄다. (가산점) 10점이면 (심사) 에서 (훨씬) 유리했다. (그런데) 팀장의 계획은 처음부터 지원 대상에 속하지 않았다. 작년 공문대로라면 팀장 (말) 이 틀린 건 아니었다. 올해는 기준이 (바뀌었고) , (따라서) 계획도 바뀌어야 했다.
한편 투 씨의 제안은 공문이 그리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결심하고 공문을 들고 어린이실로 (갔다) .
투 씨가 민아에게 (그림)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민아는 그림에 집중하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 그 (웃음소리) 에 둘레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었다.
“투 씨, 아까 (말씀하신) (모임) 이요. 진행자로 이름을 올려도 될까요? (강사료) 도 드릴 수 있어요.”
투 씨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정말요? 저는 (그냥) 도와 (주고) 싶었어요. 부담 주고 싶지 않아요.”
“ (당연히) 요. 공문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주민 강사도 금액이 똑같아요.”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베트남 엄마들 (단체) 대화방에 열두 명 있어요. 다들 (활발해요) . 아이들까지 포함해 스물네 명쯤이에요.”
우리는 (그 후) 30분 동안 낮은 탁자에 (마주) (앉아) 계획을 짰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8회. 같은 그림책을 두 언어로 번갈아 읽고, (마지막) 20분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그림을 그린다.
책은 다문화 (서가) 의 베트남어 그림책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투 씨가 서가로 손을 뻗어 (표지) 가 낡은 책 한 권을 (꺼냈다) . “이거요. 저도 (어릴 때) 읽었어요.”
“한국 엄마들도 같이 오면 좋겠어요. (말) 은 달라도 그림은 같이 봐요.” 나는 그 말을 신청서 기대 (효과) 칸에 (거의) 그대로 (옮겼다) . 두 언어 가족의 (상호작용) 이라고 한 줄을 덧붙였다.
점심 (전에) 신청서를 (완전히) (새로) 채웠다. 진행자 칸에 투 씨 이름을, 기획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 동화 구연 계획은 (생략했다) .
11시 40분, 염 팀장이 직접 데스크로 왔다. 내 (모니터) 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
“이게 뭐예요. 동화 구연으로 하라고 했잖아요.”
“팀장님, (공문) (둘째) 장 맨 아래를 (한번) 보시겠어요?”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공문을 그 (앞) 에 놓고, 심사 기준 단락을 손끝으로 (짚었을) 뿐이다.
팀장은 (한참) 말없이 (읽었다) . 영문 (안내) 도 (넘겨) 같은 단락을 (찾아) (비교했다) . 옆자리 동료 고은비 주무관이 대출 처리를 하다가 이쪽을 (보았다) . (신문) 을 보던 어르신 두 분도 고개를 돌렸다.
“한국어로만 하면 제외라. (작년) 공문에는 이런 (줄) 이 (없었는데) .”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보고서) 가 그 (이유) 를 말해 주고 있었다. 참여 (인원) 112명 중에 이주 배경 가족은 9명뿐이었다.
팀장이 허리를 펴고 (데스크) 앞에 섰다. 어린이실 (문) 앞의 투 씨 (쪽) 으로도 몸을 돌렸다.
“아까 책이나 꽂으라고 한 말은 (취소할게요) . 공문을 끝까지 안 읽은 건 나예요. 이 (공모) 는 채원 씨가 (맡아요) . 투 선생님,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투 씨가 (기분 좋게) (웃으며) 그의 사과를 받았다. “ (괜찮아요) . 선생님이라고 (불러) 줘서 (기뻐요) .”
팀장은 결재란에 (서명) 을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민아가 엄마 옆에서 신나서 그림책을 (흔들었다) .
나는 (신청서) 를 구청 시스템에 올리고 (반납) (카트) 를 끌고 (서가) 로 갔다. 남은 그림책은 세 권이었다. (뒤꿈치) 를 들고 맨 위의 베트남어 그림책을 다문화 서가 제자리에 (꽂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