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수능 독해 야자
구월 첫째 주 화요일, 야자 시간이었다. 아침 (일기 예보) 는 맑음이었는데 예측이 빗나갔다. 창밖에서 (번개) 가 한 번 번쩍하더니, 굵은 빗소리가 유리창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 교실이 잠깐 소란스러웠다.
감독은 국어를 맡은 윤 선생님이었다. 야자 감독 중에 가장 엄하다. 야자가 시작되기에 앞서 휴대폰을 모두 걷어 교탁 상자에 넣으신다. 대신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정확하게) 돌려주신다.
내 옆자리는 강은우다. 생명과학과를 (지망하는) 은우는 쉬는 시간에도 과학 잡지를 본다. 다음 달 열리는 과학 탐구 발표회에도 (나간다) . 오늘은 (화학) 문제집을 (옆으로) 밀어 두고, 두꺼운 영어책 한 권과 원고지 몇 장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은우는 한 시간째 원고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연필을 (내려놓고) 책상에 (축 늘어진) 자세로 엎드렸다. 볼펜 (잉크) 도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창틀에는 (모기) 한 마리가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쉬는 시간에 나는 은우를 달래듯 어깨를 (두드렸다) . 은우가 (사정) 을 말해 줬다. 영어 독서 (수행평가) 개요가 내일 아침까지라고 했다. 영어 원서 한 권을 읽고, 우리말로 반 장짜리 개요를 써야 했다. 책은 (바다거북) 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이야기였다.
은우는 책을 다 읽었다. 문제는 (쓴 양) 이었다. 원고지 석 장에 (줄거리) 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겉보기에는) (성실한) 개요였다. (대략적인) 줄거리만 해도 반 장이 (넘었다) .
"하나도 빼고 싶지 않아. 다 (중요한) 장면이야." 은우는 책 이야기를 할 때 (대단히) (열정적이다) . 장마다 (붙여 둔) 종이 띠지가 서른 개쯤 되었다. 띠지는 책 위로 손가락 한 마디 (높이) 만큼 삐져나와 있었다. 찾기에는 (편리한) 표시였다. 띠지를 하나라도 (떼면) 책에 미안하다는 (반응) 이었다.
나도 1학기 독서 수행평가에서 같은 일을 겪었다. 사실 그때는 개요 쓰기를 (중단할) 뻔했다. 영어 선생님이 (알려 주신) 질문 하나로 (겨우) 끝냈다. 이 장면이 (빠지면) 이야기가 (무너지는가) . 무너지지 않는 장면은 건너뛴다.
우리는 띠지를 하나씩 확인했다. 은우가 장면을 말하면 내가 물었다. "이게 없으면?" 은우는 (처음에) 모든 장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대답했고, 다섯 번째쯤부터 대답이 달라졌다.
과학자가 해변 모래로 (실험) 하는 장면은 남았다. (놀랍게도) 바다거북은 알이 묻힌 모래의 온도에 따라 수컷과 암컷이 정해진다. 모래가 따뜻할수록 암컷이 태어날 (확률) 이 높다. 과학자는 처음에 손바닥 감각만으로 온도를 짐작했다고 했다. 은우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그 이야기를 해 줬다.
"그래서 (기후) 가 더워지면 수컷이 거의 안 태어나." 은우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장면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 장면이 없으면 책 전체가 무너진다.
과학자가 (산호초) 근처에서 어린 거북이 (무리) 를 만나는 장면도 남았다. 반대로 연구선의 기계가 작동하지 않아 하루를 기다리는 장면은 뺐다. 그 장면이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은우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었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아니었다.
마지막 장의 해변 (보존) 운동도 남겼다. 그 해변은 (야생동물) (보호 구역) 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밤마다 해변의 불을 끄는 장면이었다. 불빛이 있으면 새끼 거북이 바다 대신 도로 쪽으로 (기어간다고) 했다. 은우는 이 부분이 책에서 가장 (분명한) 메시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장면은 세 개만 남았다. 모래의 온도, 산호초, 불을 끈 해변. 개요는 세 단락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단락마다 장면 하나, 그리고 그 장면이 말하는 것 한 문장. 세 단락의 (길이) 도 (균형잡힌) 편이었다.
은우는 (의욕적인) 얼굴로 새 원고지를 꺼냈다. (갈증) 이 났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 은우의 (집중) 은 야자 2교시까지 지속됐다. 나는 내 영어 문제집으로 돌아갔다. 은우가 쓰는 일에는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
야자 2교시가 반쯤 지났을 때, 윤 선생님이 교실을 (한 바퀴) 도셨다. 은우의 원고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은우는 (긴장해서) 연필을 (꼭 쥐었다) . 선생님이 (손짓) 으로 괜찮다는 (신호) 를 보내셨다.
"장면만 있고 네 생각이 없네." 선생님의 (지적) 은 (짧았다) . 은우의 얼굴이 굳었다. 선생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줄에 왜 이 책을 골랐는지 한 문장만 써. (그렇지 않으면) 줄거리 요약으로 읽혀."
엄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은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마지막 줄을 썼다. 초등학생 때 바닷가 (생태계) 체험에서 거북이 알을 처음 봤다는 이야기였다. 그 기억 때문에 생명과학을 지망하게 됐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 줄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 "이제 반 장이 (아깝지 않네) . 처음보다 많이 개선됐다." 선생님이 지나가신 뒤 은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 꾹 참았던 (웃음) 이 그제야 새어 나왔다.
야자가 끝나는 열 시, 비는 그쳐 있었다. 돌려받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우리는 같이 교문을 나섰다. 운동장 끝 작은 (연못) 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버스 불빛이 다가왔다.
정류장에서 은우가 말했다. " (개요) 내고 나면 그 책 너도 읽어 볼래? (모래) 온도 장면은 꼭 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독서 수행평가 책은 일찍 고르기로 (결심했다) .
버스 창에 빗물 자국이 남아 있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따뜻한 모래라고 적는다. 아직 못 정했던 내 책의 (후보) 가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