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9급 영어 (계약서)
(월요일) (오전) 9시 40분, 민원대 번호표 화면에 20번이 떴다. 오늘 (스무 번째) 민원이었다. (문을 연) 지 40분 만이었다.
나는 한소윤, 스물여섯 살이다. 이 주민센터 민원대에 앉은 지 석 달 된 9급 신입이다. 아침 일과는 늘 같다. 책상 밑에서 (실내화) 로 (갈아 신고) , 스테이플러에 심을 (끼우고) , (창구) (앞) 매트를 바로 놓는다.
19번은 (시어머니) 를 (모시고 온) 주부였다. (두 분) 이 한 세대로 (합치는) 신고였다. 시어머니는 내가 서류를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 대기석은 아이를 안은 손님들이 절반쯤 (차지하고) 있었다. 번호표는 2분 (간격) 으로 넘어갔다.
20번은 갈색 머리의 (여자분) 이었다. 서류철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말했다.
“ (안녕하세요) . 저는 엘레니예요. (그리스) 에서 왔어요. 이사… 신고, 하고 (싶어요) .”
엘레니 씨는 (시내) 대학의 연구원이었다. 이달 초에 대학 (숙소) 로 옮겼다고 했다. 어제 대학 (관리팀) 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신고를 미루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방은 아직 (엉망) 이에요. 종이상자가 다섯 개 있어요. 페인트 (냄새) 도 나요. (그래도) 신고 먼저 해요.”
그녀가 영문 계약서를 (내밀었다) . 첫 장 맨 위에 ‘숙소 계약서’라는 뜻의 (굵은) 제목이 보였다.
옆 창구 박정훈 주무관이 (고개를 돌렸다) . 민원대 4년 차이고, 전입 관련 업무는 그가 담당한다. 그는 제목만 훑어보고 말했다.
“숙소면 숙박시설이에요. 숙박시설로는 (전입) 신고가 안 돼요.”
“주무관님, (끝까지) 한번 읽어 보면…….”
“9급이 뭘 알아요. 석 달 된 사람이. 소윤 씨는 (번호표) 나 (불러요) .”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웠다. 박 주무관은 자기 창구로 21번을 불렀다. 엘레니 씨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봤다.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표정) 은 읽은 얼굴이었다.
“ (죄송해요) . 제가 한 번만 읽어 볼게요. (괜찮으세요) ?”
“ (네) . 괜찮아요. 천천히요.”
이상하게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계약서는 석 장이었다. 첫 장에 따르면 대학 (재단) 이 (집주인) 이고, 엘레니 씨가 방 한 칸을 1년 동안 (임대한다) . 월세에는 (관리비) 가 들어 있다. 계약은 한 번 갱신할 수 있고, 연구 기간이 (늘면) 6개월 연장도 된다.
(둘째) 장은 (생활) 규칙이었다. 건물은 (해마다) 8월에 (안전) 검사를 받는다. 그 (주) 에는 천장 배선 (공사) 가 있어서 (소지품) 을 옷장 안에 (넣어) 두어야 한다. 공사 날에는 방 (전등) 스위치를 내려 둔다. (해충) 방역도 같은 날이다. (복도) 에 내놓은 짐은 관리실이 (처리) 한다고 했다.
방에는 (욕조) (대신에) 샤워실이 있고, 공용 주방에는 식기세척기가 있다. 벽에 (망치) 로 (못) 을 박지 말라는 줄도 있었다. 2019년에 건설한 (벽돌) 건물이라고 했다.
(핵심) 은 셋째 장 맨 아래였다. (작은) (글씨) 로 한 (단락) 이 더 있었다. “이 방은 (주거용) (기숙사) 의 일부이며, 계약 (기간) 동안 (거주자) 의 주소지로 쓸 수 있다. 대학은 전입 신고에 필요한 거주 확인서를 (발급한다) .”
그 확인서가 계약서 (뒤) 에 스테이플러로 붙어 있었다. 한 장짜리였다. 재단 관리팀 (직인) 과 담당자 서명까지 있었다.
나는 (전산) 에서 (건물) 주소를 (조회했다) . 건축물대장 (용도) 란에는 ‘기숙사’라고 적혀 있었다. 호텔도 게스트하우스도 아니었다. 대학 교외 캠퍼스 옆에 (자리한) 5층짜리 주거 건물이었다.
“엘레니 씨, (여기서) 신고하실 수 있어요. (정해진) 절차대로 하면 (돼요) .”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 (정말요) ? 사실 (걱정했어요) . 제가 (실수) 한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서류는 다 맞게 (준비하셨어요) .”
신고서를 (차례로) (같이) 채웠다. (이름) (칸) 에서 엘레니 씨가 펜을 멈췄다. 그리스어 이름을 (옮긴) (철자) 가 계약서와 여권에서 한 글자 (달랐다) . 나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나란히) 놓고 (확인했다) . 등록증 표기를 기준으로 맞췄다.
그사이 박 (주무관) 이 21번 민원을 (마쳤다) . 22번이 그의 창구로 걸어오는 동안, 그가 내 (쪽) 으로 (의자) 를 밀고 왔다. 그리고 내 화면을 봤다.
“그 (거) , 숙박시설이라니까요.”
“ (건축물대장) 에 기숙사로 나와요. (셋째) 장에 확인서도 있고요.”
나는 일부러 (목소리) 를 높이지 않았다. 셋째 장을 그쪽으로 (돌려 놓았을) 뿐이다. 박 주무관은 한참 (말없이) (읽었다) . 직인을 손끝으로 짚고, 자기 화면에서 건축물대장을 다시 (조회했다) .
(대기석) 에 앉은 (주민) 몇 명이 이쪽을 (봤다) . 박 주무관이 허리를 펴고 내 창구 앞에 (섰다) .
“아까 9급이 뭘 아냐고 한 말은 (취소할게요) . 숙소라는 제목 때문에 끝까지 안 읽었어요. 엘레니 씨, (불편) 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엘레니 씨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엘레니 씨는 (손) 을 (저으며) (웃었다) . “괜찮아요. 다들 (다정해요) .”
박 주무관이 나를 (돌아봤다) . “앞으로 영문 계약서는 소윤 씨가 (먼저) (봐 줘요) . 특히 (대학) 숙소 건은요.”
“네. (마지막) (장) 부터 볼게요.”
그는 (자기) 창구로 (돌아가) 22번 민원인에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신고는 10분 만에 (끝났다) . 엘레니 씨는 (접수증) 을 받아 들고 잠깐 망설였다.
“이 (동네) , (조용해요) . (이웃) 도 좋아요. 옆방 학생이 김치를 (줬어요) .”
“잘 지내실 거예요. 이사 (축하드려요) . 우편물도 (이제) (새) 주소로 갈 거예요.”
그녀는 (서류철) 을 (가방) 에 넣으며 (한 단어) 를 말했다. “에프하리스토. 그리스어로 고맙다는 말이에요.”
나는 (확인서) (사본) 을 신고서 뒤에 (스테이플러) 로 찍었다. (인주) 뚜껑을 닫고, (매트) 를 발끝으로 바로 놓았다. 호출 버튼을 누르자 (화면) 에 23번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