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수능 독해 교실
삼월 둘째 주 화요일, 3교시는 영어였다. 고3 교실의 (분위기) 는 아침부터 조금 무거웠다. 칠판 (가장자리) 에는 수능까지 남은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내 옆자리는 어제까지 비어 있었다. 오늘 아침 담임 선생님이 대전에서 전학 온 윤채린을 데려오셨다. 채린이는 교탁 앞에서 짧게 (인사) 를 하고 내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 (시력이) 좋아서 뒷자리도 괜찮다고 했다.
"잘 부탁해." 목소리가 작았다. 새 실내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채린이는 책상 밑에서 (자꾸) 발을 움직였다.
영어 선생님은 종이 울리자마자 들어오셨다. 박 선생님은 엄하지만 설명은 늘 간단하다. "오늘은 짝 활동이에요. 지문 한 단락을 둘이 반씩 나눠서 읽어요. 마지막에는 한 줄 요약을 씁니다."
선생님은 프린트를 (돌리며) 덧붙이셨다. "다음 달 수행평가와 같은 방식이에요. 채점 기준은 학급 게시판에 첨부된 파일로 올려 뒀어요. 제시간에 못 끝낸 팀은 숙제입니다."
지문은 수능 독해 기출이었다. 철새가 머무는 곳을 (바꾸는) 방법에 관한 글이었다. 첫 문장부터 길었다. 쉼표가 네 개였다. 전치사는 여섯 개쯤 보였다.
"앞부분은 네가 (소리 내어) 읽어 볼래?" 내가 묻자 채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줄도 못 가서 목소리가 빨라졌다. 단어를 하나씩 따라가다 (숨) 쉴 곳을 놓친 것이다.
앞줄 아이들이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채린이는 프린트를 꽉 잡고 귀까지 빨개졌다. 낯선 교실에서 처음 소리를 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일이다. 고3 교실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다) .
"미안. 전 학교에서는 혼자 풀기만 했어." 채린이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문장이 길면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 그럼 나만 혼란스러워."
나도 1학년 때 똑같았다. 단어는 (수많은) 데 뼈대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영어가 (끝없는) 터널 같았다. 채린이의 표정이 그 무렵의 나를 생각나게 했다.
"끊어 읽기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채린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필통에서 연필을 빼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채린이의 프린트에 빗금을 그었다.
쉼표마다 한 번, 전치사 앞에서 한 번. "여기서 숨 쉬어. 빗금과 빗금 사이만 한 (덩어리) 로 읽는 거야."
그다음 주어와 동사에만 동그라미를 쳤다. (나머지) 덩어리는 (모두) 그 둘에 (붙은) 설명이다. 이렇게 하면 긴 문장도 짧은 문장 세 개의 (조합) 처럼 보인다. 박 선생님께 배운 방법이고, 나는 아직도 이 방법을 믿는다.
채린이는 빗금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다시 읽었다. 처음보다 훨씬 (침착했다) . 덩어리가 셋으로 나뉘자 (집중력) 도 (덜 흩어지는) 것 같았다. 철새가 별의 위치를 (통해) 방향을 잡는다는 내용이 비로소 드러났다.
"아, 별을 보고 가는 거구나." 채린이가 (짧게) (감탄했다) . 이번에는 내가 읽을 차례였다. 나도 빗금에서 한 박자씩 (쉬었다) .
둘째 문장에서는 내가 막혔다. 지구 자기장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과학은 내 약한 과목이다. 사전 앱에서 뜻을 확인하려는데 채린이가 프린트 (표면) 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지구가 큰 (자석) 이라고 생각하면 돼. 새는 그걸 몸으로 느낀대." (전) 학교가 과학 중점 학교여서 그 단원은 질리도록 배웠다고 했다. 그 짧은 말이 교과서 한 쪽보다 구체적이었다. 문장이 바로 읽혔다.
우리는 마지막 줄까지 번갈아 읽었다. 수업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요약은 채린이가 썼다. "새는 (계절) 마다 별과 자기장으로 길을 찾는다."
박 선생님이 책상 사이를 천천히 (서성거리다가) 우리 자리에서 멈추셨다. 프린트의 빗금을 (내려다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 "끊어 읽기를 했구나.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다만 시험장에서는 빗금을 너무 많이 긋지 마세요." 엄한 말투였지만 이유도 (바로) 말씀하셨다. 빗금이 많으면 오히려 눈이 (피곤하다고) 했다. " (자신) 에게 맞는 표시 하나만 정해 두세요." 채린이가 그 말을 채점 기준표의 (해당) 칸 옆에 받아 적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교실에 (웃음소리) 가 퍼졌다. 십 분은 고3에게 짧은 (휴식) 이다. 채린이는 지우개 가루를 모아 (휴지통) 에 버렸다. 그리고 (사물함) 에서 형광펜 두 자루를 가져왔다.
"빗금 값이야."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채린이는 하나를 내 필통에 넣었다. 받기만 하면 마음이 불편한 성격이라고 했다. " (어쨌든) 오늘은 네 덕분에 살았어."
점심시간, 급식실 앞은 학생 (무리) 로 붐볐다. 줄을 서 있는데 채린이가 물었다. "너는 영어를 처음부터 잘했어?" 1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3등급을 받고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아니. 지금은 빗금 덕분에 (버티는) 거야. (현실은) 아직 2 (등급) 이고." 채린이가 웃었다. (진도) 를 따라잡으려면 한참 걸리겠다고 했다. 새 학교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담임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했다.
5교시 국어 시간에 옆을 보니, 채린이는 긴 지문에 빗금을 긋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빗금은 (쉼표) 와 (전치사) 앞, 딱 두 군데였다.
종례가 끝나자 채린이가 내 책상에 쪽지를 하나 두고 갔다. 과학 지문 가운데 어려운 단어를 (정리한) 목록이었다. 맨 (아래에) 작은 글씨가 한 줄 있었다. "자기장 같은 건 나한테 물어봐."
나는 쪽지를 영어 단어장 사이에 (끼운다) . 필통 속 형광펜이 하나 늘었다. 창밖 운동장이 (기분 좋게)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