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수능 독해 (모의고사)
사월 학력평가가 끝난 목요일 저녁이었다. 반 아이들은 대략 여섯 시쯤 모두 집으로 갔다. 나는 정하람과 교실에 남아 가채점을 했다. 하람이는 모의고사 때마다 번호순으로 내 옆자리에 앉는다.
하람이는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다. 웃는 얼굴이 (친근한) 아이라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말을 튼다. 그런데 오늘은 채점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영어 영역 채점을 마친 하람이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 "또 뒤에서 네 문제를 찍었어." 이번에는 끝까지 다 하려고 했다고 했다. 마지막 장의 답 네 개가 모두 틀려 있었다. (이전의) 모의고사에서도 똑같았다.
"시간 안에 다 푸는 건 내 (한계) 인가 봐." 하람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볼펜을 쥐었던 손끝이 조금 떨렸다. 영어 시험 시간은 70분이다. 그 안에 마흔다섯 문제를 다 푸는 게 하람이에게는 매번 (악몽) 이었다. 목표 등급 달성은 늘 그 네 문제에서 멀어졌다.
"봐도 돼?" 하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망설임) 없이 시험지를 펼쳤다. (첫인상) 은 깔끔했다. 앞쪽 독해 문제는 대부분 맞았다. (게다가) 풀이 흔적도 반듯했다. 느린 사람의 시험지 같지 않았다.
"시험 볼 때 시계 봤어?" 하람이는 시계를 (전혀) 안 봤다고 했다. (대조적으로) 나는 시험지 귀퉁이에 시각을 적는 습관이 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제안한) 방법이다.
우리는 하람이가 시험지에 남긴 (흔적) 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그러다 34번에서 손이 멈췄다. 빈칸 추론 문제였다. 선택지 다섯 개 위로 동그라미와 가위표가 (왔다갔다) 그어져 있었다.
지문 옆 (여백) 은 빼곡한 메모로 채워져 있었다. (실수로) (지운) 자국도 여러 군데였다. (부정사) 가 무엇을 (꾸미는) 지 표시한 (화살표) 가 세 번이나 다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무겁게 만든 (요소) 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거 몇 분 붙잡고 있었는지 기억나?"
하람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 34번을 읽기 시작할 때 교실 시계가 1시 51분이었다고 했다. (다음 문제로 넘어갈 때) 는 2시였다.
"9분이네." 내가 말하자 하람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일반적으로 독해 한 문제에 쓰는 시간은 1분 30초 남짓이다. 하람이는 한 문제에 여섯 문제 몫을 쓴 것이다. 느리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일렀다.
"너는 느린 게 아니야. (까다로운) 문제 하나를 놓지 못한 거지." 하람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작게 웃었다. (놀라움) 과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섞인 웃음이었다. 생각이 깊이 들어가면 시계를 잊는 편이라고 했다.
"근데 그 문제, 조금만 더 보면 풀릴 것 같았단 말이야." 그 마음은 나도 안다. (마찬가지로) 나도 1학년 때 같은 실수를 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손을 떼기가 어렵다. 그러다 뒤의 쉬운 문제까지 잃는다.
우리는 다음 시험의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하람이의 연습장 한 장을 잘라내 작은 표를 만들었다. 왼쪽에는 문제 번호를, 오른쪽에는 그 번호까지 끝나야 하는 시각을 적었다. (정돈된) (글씨) 는 하람이가 맡았다.
듣기가 끝나는 시각은 1시 35분이다. 30번까지는 1시 55분, 40번까지는 2시 10분에 마친다. 마지막 장문 다섯 문제에는 10분을 남긴다.
가장 중요한 줄은 맨 아래에 따로 적었다. 한 문제에 2분 30초가 (넘으면) 별표를 치고 (바로) 넘긴다. 별표 문제는 마지막에 시간이 남을 때 돌아온다. 감에만 (의지하지 말고) 시계를 보자는 (약속) 이었다.
하람이는 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별표 치고 넘기는 거, (좀) (내키지 않아) . 포기하는 것 같잖아." "포기가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거야. 네가 (부주의해서) 틀린 게 아니잖아."
나는 (사물함) 에서 1학년 때 시험지 파일을 꺼냈다. 별표가 네 개, 그중 세 개를 나중에 다시 풀어 맞힌 시험지였다. 하람이가 오래 (들여다봤다) . 오늘 하람이의 시험지와 (비슷한) 화살표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너도 이렇게 (버텼구나) ." 1학년 겨울 모의고사는 정말 겨우 견뎌낸 시험이었다.
우리는 (바로) 연습해 보기로 했다. 작년 기출 빈칸 문제 다섯 개를 골라, 하람이가 (예상되는) 풀이 시간을 문제 옆에 먼저 적었다. 그리고 휴대폰 타이머를 켜고 풀었다. 세 번째 문제에서 타이머가 2분 30초를 넘겼다. 하람이는 입술을 깨물더니 별표를 쳤다. 연필이 잠깐 (멈췄다가) 다음 문제로 내려갔다.
다섯 문제를 다 풀고 별표 문제로 돌아오자 이번엔 2분 만에 답이 보였다. 처음 읽을 때 놓친 연결어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 (신기하다) . 다시 보니까 (분명한) 게 보여." 하람이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매우 기쁜) 일이 생긴 사람처럼 (손뼉을) 한 번 쳤다. 하람이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기지개를 켰다) .
그사이 창밖은 어두워졌다. (주변의) 교실 불이 하나둘 꺼졌다. 당직을 서시던 선생님이 문 앞으로 (다가오셨다) . 수학을 담당하는 최 선생님이었다.
"아직 안 갔니? 이제 문 잠근다." 우리가 (정중하게) 인사하자 선생님은 책상 위의 표를 (흘끗) 보셨다. "시간 배분표구나. (훌륭한) 습관이다. 그건 매일 보면서 연습하는 게 좋아." 엄한 목소리였지만 이유도 덧붙이셨다. 시험장에서 처음 쓰는 방법은 오히려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고.
교문을 나서며 하람이가 표를 반으로 (접어) 필통에 넣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하람이는 시각 네 개를 (계속) (소리 내어) (외웠다) .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희망적) 이었다.
집에 와서 나도 내 시험지를 다시 (편다) . 귀퉁이에 적힌 시각 세 개 옆에 별표 칸을 하나 그린다. 2분 30초, 하람이와 같은 숫자로. (언젠가) 별표 없이 다 푸는 날도 오겠지만, 지금은 이 칸이 든든하다.